실무 간사가 소리를 치며 전등을 껐다 켜는 것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이제 1분 남았습니다. 비행기는 곧 이륙해요. 구조할 단 한명이 누구일지 빨리 결정하세요.” 심하게 명멸하는 전등 빛 아래 더욱 긴장된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곧 비행기는 이륙했고 무인도에서 1명을 구조할 수 있었던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구조할 사람이 누구일지 결국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아무도 구조되지 못했던 걸까요?
주한미국대사관이 하와이대학교 동서센터와 공동으로 진행한 한국, 중국, 일본 국적의 아시아 리더십 훈련에서의 한 장면입니다. 사회혁신이라는 큰 공통분모가 있는 참가자이지만 역사와 문화가 다른 각 국가 펠로들과의 만남은 묘한 긴장감과 건강한 기대감을 가지기에 충분했습니다. 일정 중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할 때도 그랬습니다. 일본 공군의 폭격으로 무방비 상태에서 1177명이 숨진 ‘유에스에스(USS) 애리조나’의 침몰 현장에서 펠로들은 과거에 대한 말을 아끼면서 우리가 만들어갈 동북아시아의 미래는 무엇일까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면서 ‘무인도 구조 게임’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무인도에 남겨진 8명의 사람 가운데 한명을 구할 수 있는 뻔하고 쉬운 게임. 게임이 시작되기 전 그 누구도 이 게임에서 실패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광대한 태평양 지역,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무인도가 있습니다. 소형 여객기가 불시착하며 기적적으로 8명의 탑승객이 생존했습니다. 마침 다른 소형 비행기가 무인도 근방을 지나가다 이들을 발견했는데 단 한명의 자리만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오기 어렵다는 전제로 비행기는 25분 후 이륙합니다. 비어 있는 하나의 자리, 8명 중 누구를 태워야 할까요? 유산 이력이 있고 곧 출산이 임박한 ‘파날리’, 중동지역 내전 종식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외교관 ‘아미르’, 히스테리 이력이 있고 자살 시도를 했던 시각장애 청소년 ‘수지’, 남중국해 오일 분쟁을 두고 중국과 협상하던 일본 고위급 관료 ‘마사요’, 65년간 이산가족이었던 동생을 만나러 이동하다 불시착으로 중상을 입고 목숨이 위태로운 78살의 ‘지현’, 매우 위험한 범죄 경력의 사이코패스 ‘로저’, 세계적으로 유행한 원인불명 감염병의 백신 완성을 눈앞에 둔 ‘유미’, 마지막으로 ‘유미’의 두살배기 아이 ‘카주’. 다수결이나 투표의 방법이 아닌 합의(consensus)를 통해서만 결정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25분 뒤, 우리는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습니다.
이 게임을 최근 ‘충남사회혁신 밋업’이란 행사에 모인 50여명의 공익활동가와 사회적경제 활동가를 대상으로 진행했습니다. 세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된 이 게임에서 어떤 그룹은 한명을 선택했고, 어떤 그룹은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게임의 묘미는 ‘누가 구조되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조라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있습니다. 구조 자체에 실패하는 그룹의 공통점은 ‘구조라는 목적 그 자체’에 몰입합니다. 왜 누가 구조되어야 할지, 또는 누가 구조될 자격이 없는지에 대한 토론이 우세합니다. 한 사람을 살릴 때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거나 남은 삶의 기회가 더 많은 사람에게 집중하는 ‘공리주의’가 힘을 얻기도 합니다. 반대로 구조에 성공하는 그룹은 ‘구조라는 목적에 다가가는 과정’에 더욱 민감하고 미묘하게 집중합니다. 우리가 관찰자나 제3자의 시각이 아닌, 현장에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라고 관점이 변해갑니다. 누군가 한번도 거론되지 않은 후보로 ‘수지’가 있다고 언급합니다. 토론 중에 말할 기회가 적었던 참가자를 확인하며 경청합니다. 시작할 때 누군가 조정자 역할을 자원하거나 의견이 엇갈릴 때 위탁할 ‘최종결정자’를 미리 선택해둡니다.
‘무인도 구조 게임’은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문제 해결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전, 이 문제를 풀고자 하는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가를 먼저 돌아볼 때 우리는 매번 구조해야 할 8명이 바뀔 때마다 당황하지 않게 됩니다. ‘무인도 구조 게임’에서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