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난민이 발생해 임시 정착지를 구성할 때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또한 특정 지역에서 식수 오염 문제를 해결할 때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요? 5년 동안 유엔에서 활동했던 경험은 제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질문의 답은 모두 화장실과 관련됩니다. 직관적으론 의아했는데 왜 그런가를 생각해볼수록 흥미롭습니다. 난민 발생의 경우 텐트와 식량 배급이 가장 시급할 것 같은데, 대규모 인원이 모이면 일정 주기마다 발생하는 생리현상을 위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이 최우선 순위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루 이틀만 지나도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지하수 기반의 식수 오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식수 관련 문제가 있을 때 전문가들이 함께 병행해 점검하는 부분은 해당 지역의 대소변 처리 상황입니다. 적절한 시설이 없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대소변은 결국 지하로 흘러들어가 오염을 일으킵니다. 독일에서 ‘분뇨’ 전공을 가지고 지하수 전문가로 활동하는 특이한 경력의 한 연구자는 저에게 “서로 분리된 이슈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접근하지 않으면 항상 질병이 발생한다”며 지하수와 인간의 분뇨는 서로 연결된 쌍둥이라고 비유했습니다.
문제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문제를 지속하고 유지하는 나름의 ‘문제 생태계’와 함께 등장합니다. 이러한 현상의 생태계를 ‘시스템’이라 하고,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영향을 주고받는지, 무엇이 현상이며 무엇이 원인인지를 차분히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을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라고 부르며 이는 소셜 임팩트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략입니다.
코로나19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속에서도 시스템 사고 측면에서 흥미로운 관찰 사례가 많습니다. 중국에서 격리를 통해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은 어떤 의미일까요? 대형서점에 방문객이 줄어들면서 베스트셀러 중심의 소설 판매량이 줄어들고 좀더 특색 있는 다양한 주제의 도서 판매량이 늘어나는 특이한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전자는 일상의 분주함과 각자의 영역 등 적절한 ‘거리 균형’이 인간관계에 중요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이혼을 예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관찰에서도 어떤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판매대에 있는 베스트셀러를 보고 다른 사람의 선택을 따라가는 관행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출판문화의 다양성 증대와 전문 출판사의 진흥을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면 위와 같은 관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더 나은 접근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일까 상황일까>라는 사회심리학 분야의 명저는 시스템 사고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조언으로 가득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중요한 상황의 세부 요소”가 문제 해결에 오히려 가장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특정 상황을 경로 요인(channel factor)이라 부르는데 “어떤 경로를 열어줄 경우 행동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경로를 닫는 바람에 행동이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어떤 행동이나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치밀하게 경로 요인을 파악하고 설계하는 시스템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 사례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방글라데시)가 시작한 소액신용대출(micro-credit)이 있습니다. 담보가 없는 취약계층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사채로 빌리면서 절망적인 부채에 빠지는 현실을 목격한 그는 담보 없이도 대출이 가능한 ‘가난한 자를 위한 은행’ 그라민은행을 시작합니다. 전통적인 담보가 없더라도 취약계층이 이미 보유한 사회적 관계와 커뮤니티라는 ‘동료 신용’을 경로 요인으로 활용하여 대출 미상환의 위험 없이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소액금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 우리가 기대하는 임팩트를 위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시스템 사고와 경로 요인은 무엇일까요?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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